캔터베리 이야기는 여러 순례자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초서가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작품 속에서 한 수녀원장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본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미완성과 모순
우리는 대부분 캔터베리 이야기를 통해 초서와 만난다. 그의 마지막 업적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이 작품을 현대화해 보려는 작업이 많이 시도되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초서가 1387년부터 13년을 걸쳐 집필한 것으로 추측되어 왔다. 그러나 초서가 이미 이전에 상당한 양의 작품을 써두었다가 나중에 그 구조 속에 끼워 넣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죽기 오래전에 작업을 중단했을 것이라는 것이 논리적인 추측이다. 캔터베리 이야기가 미완성인 것은 그가 스스로 집필을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죽음이 미완성을 초래했을 가능성보다는 그의 건강 문제로 작업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미완성적 성격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주제들 중 하나이다. 우선 전체적인 구조면에서 보면 작품의 전반적인 구상이 절반도 달성되지 못했다. 그의 계획이라면 순례객의 수가 30명가량이니, 이 작품은 120개 정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야 한다. 총서시에 묘사되어 있는 순례객들은 한 그룹으로 취급되는 5명의 길드회원들까지 총 26명이다. 인물 묘사에서는 빠졌다가 나중에 이야기꾼으로 나오는 사람이 3명인데, 두 번째 수녀와 지도신부, 그리고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초서가 그들이다. 이들이 한 개씩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총 29개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7명의 순례객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22개의 이야기가 되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초서가 이야기를 한 개 더 하고, 여행 도중에 합세한 회원이 한 개의 이야기를 해서 총 24개가 된다. 뿐만 아니라 순례단은 그들의 본래의 목적인 토머스 아베케트의 묘소 참배는커녕 캔터베리에 도착조차 하지 못한다.
또 앞뒤가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인칭대명사의 성이 실제와 틀리는 경우이다. 두 번째 수녀는 스스로를 "이브의 보잘것없는 아들"이라고 일컬으며 자신을 남자인 양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선장은 "우리에게 옷을 지어주고 돈을 내는 불쌍한 남편들"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여자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또 순례객들이 도중에 휴식을 취했을 장소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는 시간들을 고려해 보면, 노정의 지리와 시간상에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모순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초서는 병 때문에 작품을 고치는 일을 중단했을 것이다. 아니면 작품의 출판 형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녀원장의 이야기
수녀원장의 이야기의 장르는 텍스트 내에 이미 기적담으로 규정되어 있다. 중세 전반에 걸쳐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기적담(miracle)들은 인기 있는 신앙심의 표현으로 유럽 전체에 퍼져 있었다. 12세기 초부터는 모음집의 형태로 편찬되기도 했다. 마리아의 기적 담을 즐기던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것은 그녀의 헌신적인 애정이었다. 이것은 교의상의 이해나 도덕적인 고결성과는 별개인 것이다. 따라서 그 이야기들은 이성보다는 정서와 감정에 더 많이 호소한다.
이야기의 줄거리
어느 도시의 일곱 살 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열렬한 숭배자이다. 선배들이 성모를 찬양하는 노래를 듣고 스스로 암기해서 학교를 오갈 때 항상 그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 그는 유대인들의 거주지를 지나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그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모욕의 보복으로 그의 목을 자르고 시체를 변소에 던져 버린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가 그를 찾아 나선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유대인들의 거주지를 지날 때였다. 목이 잘린 그의 시신이 자신의 애창곡 알마 레덴토리스(Alma redemptoris)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시체는 발굴되어 성당으로 옮겨지고, 그를 살해한 유대인들은 고문을 당하다 처형된다. 소년은 성당의 관대 위에 누워서도 계속 노래를 부르는데, 성모가 자신의 혀에 놓아준 곡식을 꺼내면 노래를 그칠 수 있다고 한다. 수도원장이 그 곡식을 꺼내자 그의 영혼은 하늘로 승천하고, 그 몸은 깨끗한 대리석 무덤 속에 안치된다. 수녀원장은 이 일이 링컨에서 유대인들에게 학살당한 꼬마 휴의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수녀원장에 대한 풍자
이 이야기를 수녀원장에 대한 풍자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러한 해석을 물리치는 순수한 종교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프롤로그이다. 수녀원장은 프롤로그에서 스스로를 동정녀 마리아의 "위대한 가치" 앞에서 말 못 하는 갓난아기로 비유하고 있다. 수녀원장의 입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프롤로그에는 어떤 암시나 가능성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중세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유대인들이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그래서 유대인이 기독교인들에게 조금의 연민도 느끼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녀원장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 살해당한 기독교 어린이의 일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기독교 유아들을 유괴해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에서 유대인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기독교 어린이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생각이 발전한 것이다. 수녀원장은 링컨의 휴의 살해에 대해 언급한다. 휴의 이야기와 수녀원장의 이야기 사이에는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유사성도 발견할 수 있다. 수녀원장의 이야기에서 유대인들이 어린 학생을 죽이는 이유는 그가 성모를 예찬하는 노래를 불러서 그들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 유대인이 휴를 죽이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자기 종족의 비열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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