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는 격변의 시대에서도 역사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그가 살았던 시기의 역사와 변화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의 작품 햄릿의 명대사는 여전히 다방면으로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위기의 역사를 문학으로 꽃 피운 작가, 역사 속의 셰익스피어
문학의 눈길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문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인간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깊이 반응하는 문학이야말로 바로 위대한 문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어디로 향하는지 잘 모른다. 큰 역사적인 사건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혹은 우연히 마주한 그림 한 점.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깨는 순간을 가져오기도 한다.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가 문득 내가 모르던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것.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그런 순간들을 마주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의 각성의 순간, 깨달음의 순간.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 비극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각성의 순간이 새로운 세계의 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그의 희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위대한 문학은 우리를 각성과 성찰로 이끈다.
격변의 시기에 살았던 셰익스피어
우리는 16-17세기로부터 굉장히 멀리 떨어져 그의 문학을 들여다본다. 셰익스피어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되는 위기의 시대에 살았다. 튜더왕조가 끝나고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때 르네상스 휴머니즘 (14~16세기에 걸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문예 부흥 운동) 사조가 생겨났다. 휴머니즘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해연구를 시작한 때이다. 그 이전에는 신에 대해 많은 탐구를 했다면 고전에서의 인간 중심적인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의 존재를 중시하고 인간중심적 사고에 따른 가치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다른 말로 인간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종교개혁이 가져온 결과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했다. 관심사를 인간 세계로 돌리게 한 것이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시아에 도달할 목적으로 항해를 시작하여 1492년 아메리카 대륙 발견한다. 거대한 세계가 유럽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다른 세계에 사람이 살고 문명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역사 속에서 살 때는 깨닫지 못하는 역사의 변화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흑사병, 인류 사상 최악의 전염병이 돌았다. 역병이 돌아 폭력과 약탈이 난무하고 사회질서가 해체되면서 가족관계, 인간관계가 다 무너지지만 이때 영웅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한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고귀한 부분을 한 번에 보여주는 위기의 순간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이러한 격변의 시기였다. 격변의 시기에 르네상스 극장이 생겨난다. 이 극장은 오락뿐 아니라 언론매체, 교회 공동체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당대의 급진적인 지성인들이 극장으로 모두 집결했다. 아주 다양한 연령층, 사회계층이 극장으로 모여들면서 극장은 당대 날 선 사회비판을 쏟아내는 장소로 변모했다. 르네상스 연극은 중세극과 내용, 형식 면에서 많이 달랐다. 중세극이 성경, 설교극이었다면 르네상스 연극은 인간 역사와 세속적인 삶을 탐구한다. 사람들의 사회적인 고통이 어떠한지 사람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연극이다. 이전까지는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시민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연극은 없었다. 다른 종류의 연극이 탄생한 것이다. 시대와 위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연극으로 관심이 종교에서 인간의 삶으로 이동한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눈길이 가기 시작하면 국가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하게 된다. 국가 얘기에 대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복수극이 대표적인 장르로 부상하는데, (복수극의 대표작품 햄릿) 어떤 힘으로 정의를 구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느냐 아님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아주 유명한 문구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로 해석되는 게 우리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어렵고 해석의 여지가 많다. 어떻게 번역하는지에 따라 햄릿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갈릴 것 같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는 게 두려운 사람은 어떻게든 살려고 한다. 삶이 두려운 사람은 죽으려고 한다. 하지만 죽어도 무엇인가로 존재하는 거라면 죽은 게 소용이 없다."라고 얘기했다. 이 극의 중요 키워드는 복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복수의 실패라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죽어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단순하게 삶을 영위하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주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로도 볼 수 있다. 이 해석은 문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까지 포괄한다. 영어의 Be는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으로 가능성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속성을 나타내는 삶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지속성을 가진 또 다른 어떤 개념들로 상황에 따라 해석이 가능하다. 영어는 중의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 많은 반면, 한국어는 실용적이고 직관적인 표현이 많다. 이처럼 명문의 경우 언어적인 차이를 극복할 초월해석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과 번역이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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