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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조이스가 보여주는 더블린의 모습과 작품의 특성

by Amy_kim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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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서 태어나 더블린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가 있다. 우리는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통해 그의 고향을 살펴본다.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난다. 곳곳에 퍼져있는 마비된 사회를 작가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관찰한다.

<더블린 사람들>은 어떤 작품인가?

이 텍스트는 조이스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분량이 적은 데다 유일한 단편집이다. 읽기가 쉽고 의미도 단순할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비록 짧긴 하지만 그의 문학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동기에서 그의 야심이 드러난다. "더블린은 수천 년 동안 유럽의 수도 가운데 하나였고, 대영제국의 제2의 도시이고 베네치아보다는 거의 세 배나 큰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어떤 예술가도 이를 세상에 제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의 이 호언은 더블린을 무대로 세계문학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포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자기가 그 일을 하겠다고 자청해서 <더블린 사람들>을 쓴 것이다. 

오늘날의 비평가들이 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율리시스나 피네건의 밤샘과 같은 그의 후기작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유는 이 작품에 이미 열린 문학의 서사 전략이 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후기작의 그늘에 가려 비평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7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닥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 불확실성의 사상에 입각한 열린 문학적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의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스토리 「죽은 이들」도 열린 결말로 끝난다. 게브리얼이 "서쪽으로 여행을 시작할 때가 왔다."라고 말하며 잠이 드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 서쪽으로의 여행이란 말의 의미가 모호하기 그지없다. 죽음의 세계를 향한 상징적인 여행이라고 보는 이가 있고, 부활과 재생의 세계를 향한 상징적인 여행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열린 결말은 완벽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열린 결말을 원형적 결말(circular ending)이라고 하는 것도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순환하듯이 반복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기의 순환성은 더블린 사람들의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작품은 죽음 이야기로 시작하는 「자매」에서 「죽은 이들」이라는 죽음 이야기로 끝난다. 첫 스토리에는 마지막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산 이와 죽은 이가 등장한다. 마지막 스토리는 첫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두 자매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그리고 촛불 이야기로 시작하여 촛불 이야기로 끝난다. 조이스의 열린 문학은 독자가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읽게 하는 데 목적을 둔 것 같다.

 

더블린이라는 도시는 마비의 심장부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을 쓴 한 가지 이유로 '마비'로 신음하는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려는 데 있다. 그는 출판인 리처즈에게 "나의 의도는 우리나라 정신사의 한 장을 쓰는 데 있다. 나는 그 무대로 더블린을 골랐다. 이 도시가 나에게는 마비의 심장부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일랜드 전역에 만연해 있다고 보는 마비라는 증후군을 어느 누구도 들추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이 작품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마비는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알코올 중독, 어린이 학대, 가정 폭력, 경제적 궁핍 등이다. 15편의 스토리는 서사와 상황이 서로 다르듯 마비의 양상 또한 서로 다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1. 꿈의 좌절

꿈을 이루는 인물이 거의 없다.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좌초되고 만다. 

「이블린」에서 아버지의 주정과 폭력으로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블린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프랭크를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려한다. 떠나기 전날 집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정신이상으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정작 밤배가 떠나려 할 때 그녀는 배를 타지 못한다. 여객선 부두까지 갔으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공포감이 그녀를 덮친 것이다. 프랭크가 따라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하얗게 질린 얼굴을 그에게 향했을 뿐이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던 그녀의 열망은 용기의 마비로 실패하고 만다. 

 

2. 술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

더블린 사람들의 15편의 스토리에는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시민들은 술집을 돌아다니거나 거기서 떠드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술을 입에 달고 산다. 이들 대부분은 고질적인 음주벽의 소유자들로 그 행태는 가정 폭력과 학대 등으로 나타난다.

 

3. 경제적 피폐

조이스는 가난에 찌든 경제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의 눈에 비친 아일랜드 경제는 빈곤과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을 비롯한 대륙의 다른 나라들은 풍요과 근면성의 대로를 질주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낙후성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 그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조이스는 마비라는 병폐가 다양한 모습으로 더블린 전역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이 마비의 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데 있다. 조이스가 글을 쓴 것은 바로 이 시민들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가 더블린을 세상에 제시하겠다고 호언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런 호언을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개척한 열린 문학에 필요한 문학 기법을 성공적으로 창출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정신적 병폐를 낱낱이 들추어 조국 발전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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