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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무인도에 내던져진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by Amy_kim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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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가문에서 태어난 대니얼 디포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그의 작품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작가는 우리에게 크루소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
Daniel Defoe, 1660~1731

영미문학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청교도 문학가

대니얼 디포는 166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런던에서 꽤 큰 양초 제조상이었다. 그는 독실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청교도 가문이었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시민권까지도 박탈당했다. 1688년 명예혁명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던 그는 자유주의자이면서 청교도였다. 당시의 엄격한 영국 국교회를 비판했다. 독실한 신앙을 가졌던 그는 21살이 되던 해 목사가 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청교도 목사로 살아가야 했던 현실이 고통스러워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상인이 되었다. 32살에 사업의 큰 어려움으로 파산을 겪게 되었다. 다양한 일을 하다가 43살에 작가가 되었다.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목회자의 길을 포기한 지 38년이 지난 후에 글을 통해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썼던 책이 바로 그의 첫 작품 <로빈슨 크루소>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풍랑을 만나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이후 무인도에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이때 로빈슨 크루소가 배에서 상자를 가지고 와서 열었는데 그 안에서 성경책이 나온다. 성경책을 펼치고 처음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50편 15절) 대니얼 디포는 왜 이 구절을 택한 것일까? 그가 태어나기 13년 전이었던 1647년에 영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을 작성한다. 웨스터민스터 교리 제1문이 이것이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를 그를 즐겁게 하는 것. 대니얼 디포는 그 목적을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니얼 디포에게 구원이란, 죽은 이후 어떤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상태였다.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설교였던 셈이다.

 

무인도에 갇힌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로빈슨 크루소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탐험하고 싶어 했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브라질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곧 농장은 번창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무리로부터 노예무역을 위한 상선의 항해에 동행해 줄 것을 부탁받는다. 크루소는 이 부탁으로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그러나 항해 도중 거대한 풍랑을 만나게 되고 거의 모든 배들이 난파당한다. 크루소는 바다를 표류하다가 한 무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무인도였던 그 섬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농사도 짓고 자신의 집과 별장까지 소유하게 된다. 이렇게 그는 20여 년을 살아가면서 무인도에 적응한다. 

그러던 중 그는 해변에서 사람 발자국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무인도 주변에 살던 식인 풍습을 가진 원주민들이 와서 종종 식인 행사를 해왔던 것이었다. 크루소는 그들에 대한 극한의 공포와 증오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한 식인 행사에서 한 남자를 구출해 주는데, 이 남자는 크루소의 충실한 부하이자 친구가 되는 프라이데이였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에게 총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식인 원주민들의 접근도 차단한다. 그 둘이 함께 생활한 지 3년이 되던 때, 크루소가 주변 해역을 지나던 영국 상선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 덕분에 크루소는 28년 만에 무인도를 탈출한다. 이 시간 동안 묻혀있던 그의 자산이 엄청 불어나 큰 부자가 되어 영국으로 돌아간다. 

 

크루소를 대신해 전하고자 했던 작가의 메시지

인생에 대한 교훈이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스스로를 자기의 운명을 불행하게 이끌어가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에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는 인생이 불행해지는 이유로 자신의 처지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루소가 매번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것을 찾아 나서다가 결국 불행을 맞게 되는 모습으로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고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가정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크루소의 마음가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누구나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직장 생활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일 수도 있다. 크루소가 생존을 위해 무인도를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크루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고군분투했다. 그가 내던져진 무인도는 어쩌면 인간의 외로운 싸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는 반인륜적인 행위가 들어가 있다. 노예매매와 식인행위가 그것이다. 크루소는 식인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보이면서도 노예매매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노예매매를 위한 상선의 항해에 거리낌 없이 동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크루소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는 원주민 출신의 프라이데이는 자신의 노예로 삼지만, 그곳에서 만난 영국인도 이나 스페인인들은 친구로 대한다.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자이면서 청교도였던 작가 대니얼 디포. 그도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에 대한 당시 서구의 시대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 시대에 살았던 서구인의 한계도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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