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시대 (The Stuarts: 1603~1688)를 두 시대로 나누어 살펴본다.
스튜어트 시대는 제임스 1세 시대(1603~1625), 찰스 1세 시대(1625~1649), 올리버 크롬웰(Olive Cromwell 1599~1658)이 지배하였던 공화정 시대(Commonwealth 1649~1660)와 스튜어트 왕조가 복위된 왕정복고기 (Restoration)로 나뉜다.
청교도 혁명 기간으로도 알려져 있는 공화정 시대는 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 지도자인 올리버 크롬웰 아래 의회에 의해 통치되었다. 1658년 그의 죽음은 공화정의 붕괴를 가져왔다. 청교도 이후 18년 동안 희극은 거의 사라졌고, 1660년 왕정이 복고될 때까지 연극이 쇠퇴하였다.
1. 공화정 시대 (1649~1660)
스튜어트 시대 초기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혼란은 주로 왕과 의회와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는데, 1640년대에 있었던 대내란(the Great Rebellion), 영국 혁명(English Revolution),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은 찰스 1세를 처형시킨 후에야 종식된다. 1649년 찰스 1세는 사형 선고를 받고 화이트홀에서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처형된다. 청교도 공위 기간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시대는 종교와 정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인 혁명기였다. 이 기간 동안 청교도 지도자인 크롬웰이 호국 경이되어 그가 주도한 의회가 나라를 통치했다. 크롬웰 집권 직후 오락적이고 사치스러운 요소들이 제거되었고 경건하고 엄숙한 생활이 강요되었다. 드라마는 청교도들이 도덕적, 종교적 근거로 극장을 폐쇄하면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2. 왕정복고기 (1660~1700)
왕정복고기의 명칭은 공화정치 시대가 끝난 1660년에 스튜어트 왕가가 영국 왕위에 복위된 데서 유래한다. 이전 청교도 체제와 크게 대조되는 궁정을 중심으로 한 삶의 세련성, 기지 등이 이 시대의 많은 문학에 반영되었다.
이 시대는 한마디로 격동의 시대였다. 1660년에 있었던 왕정복고는 영국인의 내적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대사건이었다. 왕정이 복구된 후 두드러진 점은 모든 분야에서 청교도적 잔재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탄압의 시대가 가고 해이와 방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1642년 극장 폐쇄령이 철폐되자 극장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극장이 다시 열리면서 연중행사가 허락되자 거리에는 술집과 홍등가가 생겼다. 과거 20년 동안 그들을 구속했던 풍속과 사상을 밀어내고 청교도의 위선을 배척한 나머지 지나치게 방종과 퇴폐로 흐르게 된 것이 이 시대의 일반 풍조였다. 문학에 있어서도 퇴폐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윌리엄 위철리(William Wycherley 1640~1716)와 윌리엄 콩그리브(William Congreve 1670~1729)의 희극에서 영국 문학사에서 드물게 음란한 문학을 보게 된다. 엘리자베스 시대 문학에서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창작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정적인 면 이면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영국인의 내면 생활을 보면 이 시대는 영국인의 새로운 자세와 새로운 균형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엘리자베스 시대 이래 영국인들의 마음의 폭은 넓어졌지만, 정치적으로는 파당의 분열이 있고, 종교적으로는 개인의 양심과 전통적 권위라는 양극이 있었다. 이러한 분열로 신의 율법에 준거하는 이상 국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영국민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방종한 삶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반성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이 시대에는 앞선 시대에서 보지 못하던 풍자 시, 희극, 비평이 있었고 특히 산문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끼친 프랑스 문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 치하에서 유럽 최대의 강국이었을 뿐 아니라, 프랑스 문물이 세계에서 빛을 발하던 시대였다. 영국인은 프랑스 말과 풍습을 받아들이고 프랑스의 시와 소설을 번역하였다. 당시의 프랑스 문학이 궁정 문학과 귀족 문학이었던 만큼 영국의 문학도 궁정 문학의 색채를 띄게 된다.
풍자 정신은 이 시대의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모든 가치 관념이 전도되면서 생기게 된 산물로, 청교도의 허위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이 유행했다.
엘리자베스 시대 후기에서 왕정복고기 사이에는 형이상학파(Metaphysics)와 왕당파(Cavalier) 두 시파가 등장한다.
1. 형이상학파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복잡한 의미, 세심한 구조, 정교한 기상의 시들을 썼다.
흔치 않은 압축된 생략 구문(concent ration)을 씀으로써 집약적인 표현을 담아냈고, 역설(paradox)로 자기의 주장을 더욱 강력하고 분명하게 표현했다. 정서를 함축하지 않은 상업, 과학, 지리 등의 용어를 즐겨 씀으로써 규칙적인 리듬 대신 활기차고 극적인 효과, 즉 부조화의 조화(discordia condors)를 보여준다.
흔히 종교 시인과 세속 시인으로 나뉜다. 종교시인으로는 존 단(John Donne),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등이 있고, 세속 시인으로는 앤드류 마블(Andrew Marvell), 존 클리블런드(John Cleveland) 등이 있다. 형이상학파시들을 종교시와 세속시로 나누지만, 두 종류의 시 모두 한 시파, 즉 17세기 종교시파를 이루면서 영문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시들은 규칙적인 시를 썼던 왕정복고기 및 18세기 시인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을 수 없었다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허버트 그리어슨 경(Sir Herbert Grierson)과 엘리엇의 노력으로 형이상학이란 말이 긍정적인 의미의 용어가 되었다.
2. 왕당파
왕당파 시인들은 대부분 찰스 1세의 궁정에 속해 있었고 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왕당파 시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왕당파 시인들의 주요 주제는 사랑이다.
왕당파 시인으로는 토마스 케어리(Thomas Carew 1594~1640), 리처드 러브레이스(Richard Lovelace 1618~1659), 존 서클링 경(Sir John Suckling 1609~164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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