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로렌스의 삶과 그가 집필한 작품들을 알아본다. 그는 연애하는 여인들에서 파괴의 길로 나아가는 사회를 그린다. 하지만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영국의 소설가 로렌스의 생애
D. H. 로렌스(D. H. Lawrence)는 1885년 영국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육을 받지 못한 광부였고 본능에 따라 무절제하게 행동했다. 어머니는 청교도적인 생활 태도를 지닌 전직 교사 출신이었다. 둘은 성격과 배경 면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부부였고 화목하지 못했다. 로렌스는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육체와 정신, 본능과 지성이라는 상반되는 두 속성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는 꽉 막힌 결혼 생활의 반작용으로 로렌스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았다. 이는 그에게 큰 심리적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그 여파로 원만한 이성 관계를 맺지 못하던 로렌스는 한동안 사귀었던 여자와 헤어지고 만다. 이 자전적 경험은 1913년 출판한 <아들과 연인>(Sons and Lovers)에 그대로 녹아 있다.
로렌스는 1898년 산업도시 노팅엄에서 중산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광부의 아들인 하층계급 출신이었던 그는 거기서 계층적 자의식을 갖게 된다. 2년 제인 노팅엄 대학에서 1908년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잠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그는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대학 시절 단편소설과 희곡을 써 왔던 로렌스는 1906년에 <흰 공작>(The White Peacock) 집필을 시작하여 1910년에 출판한다. 이것이 그의 첫 장편 소설이다.
로렌스는 대학 시절 스승이던 위클리 교수의 아내였던 여섯 살 연상의 프리다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독일로 도피한 후 이태리에 정착한다. 위클리 교수가 이혼에 동의해 주자 그들은 정식 혼인신고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온다. 하지만 유럽으로 건너가기 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바람에 그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악몽과 같은 삶을 살았다. 로렌스는 몸이 허약했는데도 병역 판정 신체검사를 세 번이나 받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프리다가 독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첩자 혐의까지 받으면서 당국에 거처를 신고하며 살아야 했다. 로렌스는 전쟁에 광분한 대중들을 혐오했고 영국을 타락한 문명의 본거지로 폄훼한다. 이때의 심정은 <연애하는 여인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외설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부당하다가 1920년이 돼서야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을 계속한 로렌스는 1920년 <잃어버린 소녀>를 완성했고, 1922년에는 <아론의 지팡이>를 출판했다. 이 작품은 이른바 로렌스의 정치소설 시기의 막을 열었다. 그해 호주에서의 체류 기간에 받은 인상을 토대로 두 번째 정치소설인 <캥거루>를 집필했다. 1923년에는 멕시코에 체류하면서 <날개 돋친 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세 소설에서 로렌스는 남성 세계의 리더십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마지막 소설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다. 로렌스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23년 건강 악화로 다시 이태리로 건너갔을 때였다. 1928년 이태리에서 출판된 이 작품은 외설 시비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의 핵심주제는 현대산업사회의 파괴적인 영향을 막아낼 대안으로서의 남녀 간의 따뜻한 교류의 모색이었다. 그는 1930년 프랑스에서 폐결핵으로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연애하는 여인들
로렌스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쟁의 여파를 몸소 겪는 가운데 집필한 책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현대산업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영국은 곧 멸망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로렌스의 통렬한 비판과 절박한 진단은 긴 사색의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것이다. 1916년 이 소설을 완성하면서 그가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최후 심판의 날이었다. 제목에 걸맞게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폭력적이며 어둡고 어수선하다. 현대 서구 산업사회에서 목격되는 비인간화와 기계화는 인간성의 해체를 향해 치닫는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서 로렌스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버킨이다. 그를 통해 나타나는 로렌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 영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사회는 해체의 과정에 있고 파멸을 향하고 있다. 맹목적인 지식의 추구는 인간의 정체성을 파괴하면서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도구화한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유기적인 생명력을 상실하게 한다. 현대산업사회에 대한 버킨의 생각은 런던행 기차 안에서 제럴드와 나누는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영국을 비롯한 현대산업사회는 운명적으로 자멸할 수밖에 없고 인류는 사멸된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영국은 죽어가는 나라이고 영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영국이 새로 출발하지 않는다면 곧 와해되리라는 것이다. 버킨이 보기에 현대산업사회 백인들의 운명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제럴드이다. 광부들의 복리를 생각하는 자애로운 탄광주였던 부친과는 달리, 제럴드가 경영에 나서면서 현대 기계문명의 물결이 탄광촌에도 들이닥치게 된다. 그는 무한히 반복하는 기계와 같은 시스템을 만든다. 제럴드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통해 생산성과 이윤을 극대화한다. 이제 광부들은 기계의 부품 같은 신세로 전락한다. 광부들은 처음에는 당황하나 점차 초인간적인 위대한 사회적 생산 기계에 소속되었다는 데서 일종의 자유와 만족감까지 느낀다. 이렇게 해체의 첫 단계가 시작된다. 생명체의 유기적 원칙을 무생명의 기계적 원칙이 대체함으로써 인간은 해체에 접어드는 것이다.
로렌스는 파국으로 치닫는 사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진단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비관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 산업사회가 어떻게 해체와 파괴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파고든다. 이와 동시에 창조와 생성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자신만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해체의 길에서 벗어나는 방안은 로렌스가 버킨을 통해 제시한 개인의 홀로 있음이다. 사회 집단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홀로 있음을 유지하면서 독자성을 확보하고 진정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렌스의 비전은 고립이나 단절 그리고 이기주의와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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