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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시대 여성들의 옷차림

by Amy_kim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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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의 속옷은 남성에 비해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입는 순서도 복잡했는데요.

 

내의, 내복, 단의, 설복, 친의 등은 모두 속옷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여름에는 땀의 흡수를 도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내복을 입었습니다. 

 

여성들에게 속옷은 때때로 옷의 모양새를 다잡아주고 우아함을 극대화시켜 맵시 있는 자태를 만들어주기도 했죠.

 

대게 흡수성이 좋고 세탁이 용이한 저렴한 무명으로 만든 속옷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복용 속옷을 만들거나 신분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화려한 무늬를 넣거나 명주비단 같은 비싼 천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다고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비단으로 만든 속옷만 입었냐 하면 아닙니다. 속옷의 종류는 신분이나 경제력과 무관하게 거의 동일했다고 합니다. 물론 재질과 디자인이 들어간 속옷은 여유 있는 생활의 문제로 직결되죠. 그래도 어차피 겉옷을 입으면 안 보이기는 매한가지니까요.

 

조선시대 여성용 내의
속적삼과 속치마로 구성된 여성용 내의 (국립민속박물관)

 

여성이 상의 속옷은 홑겹인 속적삼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땀 흡수를 위한 용도로 흔히 속저고리라고 불렀죠. 아무리 무더운 한여름에도 속적삼 없이 겉저고리를 입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속적삼 위에 안저고리라는 속옷을 한 겹 더 입었는데, 여기에 겉저고리까지 입는 것을 일컬어 '삼작저고리'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저고리 길이는 눈에 띄게 짧아졌습니다. 그래서 겨드랑이와 가슴을 가리기 위해, 맨살 위에 두르는 가리개용 허리띠가 등장하기도 했죠. 조선의 가리개용 허리띠는 가슴을 납작하게 졸라매는 용도였습니다.

 

조선시대 여성용 하의조선시대 여성용 하의
단속곳과 속속곳

치마 안에 입는 하의는 종류가 매우 다양했습니다. 가장 먼저 다리속곳을 입었어요. 다리속곳은 주로 무명을 사용했고, 여러 겹으로 길게 접어 허리띠에 달아서 입었습니다. 그 위에 밑이 막혀 있고 길이가 짧은 속속곳을 입고, 흔히 속바지라고 불리는 고쟁이를 입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시 그 위에 양 가랑이가 넓고 치마보다 조금 짧게 내려오는 단속곳을 입었습니다. 안쪽에 입는 속옷일수록 세탁하기 쉽고 저렴한 무명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단속곳은 속속곳과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매우 유사했는데요. 속치마 대용으로 입을 수 있을 만큼 길이가 길고 바지통이 컸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긴 시간 노동에 종사했던 서민 여성들은 이 복잡한 과정을 대폭 생략했죠. 다리속곳 위에 바로 고쟁이를 입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고쟁이의 밑이 터져 있어서 용변을 보기에 편리하고, 더운 여름에는 이렇게 입는 편이 훨씬 시원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여성용 속옷 하의 대슘치마
여성용 속옷 하의 대슘치마 (국립민속박물관)

반면에 신분이 높은 양반가나 궁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은 속옷을 생략하여 입기는커녕, 단속곳 위에 그보다 바지통이 더 넓은 너른 바지를 겹쳐 입고, 모시 12폭을 이어 만든 대슘치마를 입었습니다. 때로는 우아함과 화려함을 위해 무지기까지 덧입곤 했습니다. 대슘치마와 무지기는 겉치마를 넓고 고르게 펼쳐서 유지시켜 주었는데요. 여성의 아름답고 고고한 맵시를 뽐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그래서 상류층 여인들뿐만 아니라 기녀들도 애용하곤 했습니다.

 

 

TV 드라마나 영화 속 조선시대 양반 여성들을 보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고 있죠. 얼굴을 드러내고 외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옷이나 쓰개치마, 너울 등으로 얼굴을 가린 건데요. 양반가와 평민 여성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주로 사용한 것이 다르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변해갔다고는 하지만, 신분은 막론하고 장시간 외출을 하는 경우엔 많은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곤 했습니다.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쓰던 쓰개치마신윤복의 월하정인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쓰던 쓰개치마 (국립민속박물관)와 신윤복의 <월하정인>

외출할 때 머리에 덮어써서 얼굴을 가리는 쓰개치마는 옥색 옥양목이나 명주로 만들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겹으로 만들거나 솜을 넣어 사용하기도 했죠. 일반 치마 모양에 끈이 달려 있어서 치마허리를 얼굴에 감싼 후 속에서 손으로 앞을 여며 잡아 사용하였습니다. 

 


 

왕실의 여인은 겹겹이 겹쳐 입은 속옷 위에 화려함을 더한 회장저고리를 입거나 당의를 입었습니다. 

회장저고리와 덕혜옹주 문항라 부금 당의 (국립민속박물관)

 

당의는 예의를 갖추고 간단하게 차려입은 궁중 소례복으로, 초록색 바탕에 자주 고름을 단 것이 일반적이나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졌습니다. 왕비의 경우는 소나무의 꽃과 꽃가루 색의 송화색 저고리를 주로 입곤 했습니다. 

궁중 평상복 치마는 남색치마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왕비는 용무늬를 세자빈은 봉황 무늬를 넣었으며, 공주·옹주는 양반가의 여인들처럼 꽃과 글자 무늬를 넣곤 하였습니다.

 

조선 말기에 황후가 입었던 대례복. 처음에 동궁비 적의로 지정되었으나, 고종이 황제에 오른 뒤 황후의 적의로 입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황후적의로 개칭됨

대례복은 궁중에서 행사가 있을 때 입던 옷으로, 왕비의 대례복은 '적의'라 부릅니다. 

 

 

 

조선시대 남녀의 옷차림은 어땠을까

조선시대에 가장 일반적으로 쓰였던 옷감은 삼베와 무명이었다. 삼 껍질을 찢은 섬유로 만든 삼베는 내구성이 좋아 오래전부터 옷감으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옷은 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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